수장고 집기 설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보통은
수장대를 모빌랙으로 할 것인가, 이층형 수장대로 할 것인가 같은 하드웨어부터 떠올리기 쉽죠.
그런데 유물을 진짜로 지켜주는 건, 생각보다 “눈에 안 보이는 것들”이에요.
- 온도·습도
- 공기질(먼지·가스)
- 곰팡이·해충 같은 유기체
- 건축·내부 마감재
- 빛(조명·자외선)
이 다섯 가지가 어떤 상태로 유지되느냐에 따라,
같은 수장대라도 내용연한이 달라지지요.
이 글에서는 박물관·미술관 수장고를 기준으로,
전시실·수장고 환경을 설계·운영할 때 꼭 생각해볼 요소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.

거시환경 vs 미시환경 – 건물 vs 유리장
수장고 환경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두 가지 층위를 나눠서 봐요.
거시환경
- 건물 전체, 혹은 방 단위의 큰 공간
- 예: 수장고 전체, 전시실 하나, 건물 단위 HVAC로 관리되는 영역
미시환경
- 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‘상자’들
- 예: 전시 진열장, 유리장, 보관 캐비닛, 박스
수장고를 설계하거나 리모델링할 때
“건물 전체를 HVAC로 제어할 것인가,
아니면 진열장·캐비닛 중심으로 미시환경을 안정화할 것인가”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.
둘 중 뭐가 더 나은 방식이며 중요한가의 문제가 아니에요.
예산·건물 상태·기후·운영 인력에 따라 현실적인 조합을 찾아야 해요.


온도와 상대습도 – 기본 중의 기본
유물 보존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환경요소는 온도와 상대습도입니다.
- 일반적인 기준값 예시
- 온도: 20~22℃ 내외
- 상대습도(RH): 45~55% 내외(급격한 변동이 없을 것)
실무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“절대값”보다도 변동 폭을 줄이는 것이에요.
- 하루 안에 온도·습도가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이지 않게 하기
- 계절이 바뀌어도 서서히 변하게 만들기
HVAC 시스템을 갖춘 수장고라면,
온·습도 기록계(온습도계, 하이그로써모그래프 등)로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수이고,
그렇지 못한 환경이라면:
- 직사광선 차단, 단열 보강
- 선풍기·공기 순환 장치로 국지적인 편차 줄이기
- 민감한 유물은 밀폐형 캐비닛 + 완충재(실리카겔 등) 로 별도 관리
와 같은 ‘현실적인 선택지’를 조합해야 합니다.
적정 온습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유물의 재질에 따라서도 달라져요.






먼지와 공기오염 – 생각보다 강력한 적
수장고에 쌓이는 먼지는 단순한 청소 문제를 넘어서,
- 표면 마모
- 화학 반응 촉진
- 곰팡이·해충의 먹이
가 되는 골칫거리입니다.
기본 원칙은 두 가지예요.
- 들어오는 먼지를 줄이기
- 출입구에 이중문·에어커튼·매트 설치
- 외부와 바로 연결된 문·창 최소화
- 들어온 먼지는 빨리 제거하기
- 마른 걸레보다는 물걸레·HEPA 필터 청소기 활용
- 청소 시간·동선·도구를 수장고용으로 별도 관리
공기 중 가스(황산가스, 질소산화물, 포름알데히드 등)도 중요합니다.
시스템적으로는 필터·흡착재(활성탄 등)를 사용하는 게 이상적이지만,
- 수장고 내 금연
- 신선한 도장·접착제·목재를 바로 유물 옆에 쓰지 않기
- 내부 마감재 선정 시 “오프가스 테스트” 혹은 검증된 재료 사용
같은 기본 원칙만 지켜도 피해를 꽤 줄일 수 있어요.

곰팡이·해충 – 발견보다 ‘발생 예방’이 핵심
유물에 해를 주는 유기체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.
- 곰팡이
- 곤충(좀·나방 등)
- 작은 설치류
관리의 3단계는 변하지 않아요.
- 감시
- 끈끈이 트랩, 유혹등(유아등) 설치
- 정기적인 수장고 라운딩 + 기록
- 예방
- 수장고·전시실 내 음식물 금지
- 반입되는 모든 물품(포장재 포함) 검사
- 정기 청소와 불필요한 적치물 최소화
- 박멸
- 발견 즉시 해당 구역·유물 분리
- 피해 범위 기록 + 적절한 방제(동결·저산소·약제 등, 기관 매뉴얼에 따라)
실제로는 ‘예방 루틴’을 얼마나 잘 버티느냐가 관건입니다.

건축·내부 재료 – 숨은 오염원 체크하기
수장고는 “건물 안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상자”이기 때문에,
건축재료와 내부 마감재도 중요한 변수입니다.
- 합판·MDF·하드보드 → 포름알데히드, 유기산 방출
- 일부 도료·접착제·실란트 → 장기간 가스 발생
- 저가 플라스틱 마감재 → 가소제가 계속 증발
이런 재료들이 밀폐된 캐비닛·진열장 안에서 천천히 가스를 내보낸다고 생각해 보시면,
유물 입장에서는 꽤 혹독한 환경이죠.
그래서 실무에서는
- 유물과 직접 닿는 면에는 검증된 보존용 재료 사용
- 새로 만든 진열장·캐비닛은 에이징 기간(환기 기간) 을 두고 사용
- 가능하면 보존과에서 추천하는 “안전 재료 리스트”를 공유
같은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경우가 많습니다.

빛
빛은 전시에는 필수지만, 유물에게는 항상 손상을 남기는 에너지입니다.
- 가시광선: 색 바램, 재질 약화
- 자외선(UV): 화학 구조 파괴, 변색, 취약화
- 적외선(IR): 열 상승 → 화학 반응 가속
그래서 조명 계획을 세울 때는
- 밝기(조도) 를 용도별로 제한
- 예: 민감한 유기물(종이, 직물, 사진 등)은 50럭스 이하
- 노출 시간 관리
- 상설 vs 기획, 교대 전시, 조명 on/off 시간 조정
- 광원 선택과 차단
- UV 필터, 간접조명, 광섬유 조명, LED 활용
같은 원칙들을 조합합니다.
수장고의 조명도 마찬가지지만, 전시는 특히 기획 단계에서부터
“이 유물은 몇 년에 한 번, 어느 정도 조도와 시간으로 전시할 것인가?”를
함께 논의해 두는 게 가장 이상적이에요.

수장고 환경, 완벽함보다는 ‘일관성’이 먼저
현실의 수장고는 늘 예산·공간·인력·건물 상태에 묶여 있습니다.
모든 박물관이 최신 HVAC, 공기정화, 자체 시험실을 갖추기는 어렵죠.
그래서 더 중요한 건 완벽한 수치보다도,
- 지금 이 수장고가 어떤 환경 상태인지 “알고 있는 것”
-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변동을 줄이고,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
입니다.
앞으로도 수장고 설계, 수장대 구조, 내진, 공간 효율 같은 기술 이야기와 함께
이렇게 “보이지 않는 환경” 이야기도 틈틈이 다뤄볼게요.

대원모빌랙은 박물관과 함께
더 좋은 수장공간을 고민하고 싶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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